Thursday, April 19, 2012

Excerpt: 빗속에서 – 공선옥



빗속에서 – 공선옥

“병원에서 막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요즘은 어디서도 전화 올 일이 없어 나는 내게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울리자 나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아이 학교였다. 집 전화를 아내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그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휴대폰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애가 없어졌어요. 이틀쨉니다. 이번엔 동네에서 오토바이를 훔쳐가지고 세 놈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 임자가 애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신고를 안 해서 망정이지 이건 완전 절돕니다, 절도.”

여름방학 끝나고 학교 간 지 며칠이나 지났나. 겨우 일주일이다. 벌어진 상황에 비해 담임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담임의 차분함은 아이에 대한 학교의 체념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었다. 지난 학기에도 아이는 네 번이나 사고를 쳤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차분하지 않은가, 그래도 자기네 학생인데……의 끝에 갑자기 내 안의 뭔가가 꿈틀했다. 그 뭔가는 맨 처음 배꼽 근처에서 갑자기 출몰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구만리 같은 내장 깊숙한 곳,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온 것 같기도 하다가 그냥 배꼽 근처에서 갑자기 돌출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굳이 울음이라고 명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그것의 느낌이 구체적이지 않고 뭔가 추상적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설움이라고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 나면 그것은 그나마 있던 구체성을 급격히 상실한다. 울음도 아니고 설움도 아닌 그것은 말하자면 까칠함이다. 휑함이다. 선득함이다. 아니다, 그것은 전혀 낯선 이방에서 온 외래객이다. 외래객이 내 속을 점령했다. 외래객은 서서히, 그리고 급속도로 내 속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내 속에서 난데없는 먼지가 푸석푸석 이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먼지의 회오리, 회오리는 서서히 명치 위로 치받치고 올라온다. 그래서는 목울대를 아프게 휘젓기 시작한다. 내 안을 휘젓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 리 없는 담임은 여전히 일부러 그러는 것이 역력한 낮은 톤으로, 일면 음산한 어조로 물었다.

“집에는 안 갔죠?”

“케켁, 예. 안 왔어요.”

먼지의 회오리가 휘저어놓은 목 안은 뻑뻑하다 못해 아팠다.

“학교에서도 수소문해보긴 하겠습니다만, 돌아온다 해도 걱정입니다. 교장 선생님 노여움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계속 방치했다간 다른 아이들한테 끼칠 영향도 있을 것 같고…….”

“알겠습니다. 제가 학교로 가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더 이상 켁켁거리지 않고 말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또박또박 나와줘서 다행이다.

난데없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이 낯선 이물감은 두통이 시작되고서부터 생긴 증상임이 틀림없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더니, 그럼 이것이 혹 우울증인가. 아내도 이런 증세를 앓고 있는 것인가.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다. 가상을 현실로 믿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고 게임만 했다. 소위 부적응아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놓고 나는 아이를 잊었다. 아니, 잊고 싶었다. 학교는 시골에 있었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금지였다. 학교 주변에 밭이 있었고 그곳에서 노작 교육을 한다고 했다. 백 평이 될까 말까 한 그 밭에 나는 일단 희망을 걸었다. 대안은 없었다.

이따금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소집했다. 소집은 주로 기숙사에서 난동을 부린 아이가 있거나, 집단 패싸움을 벌였거나, 교사에게 대들었거나, 학교 기물을 파손했거나, 금지 목록인 술 ․ 담배를 했거나, 여학생과 부적절한 교재를 했거나, 학교 인근 마을에 들어가 말썽을 부렸거나, 자해를 했거나, 그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거나, 하여간 그 종류는 다양했다. 마지막 학부모 소집이 있었던 것이 여름방학 직전이니까 한 달여 전이었다. 아이가 담임교사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피우지 않는 게 좋겠다는 담임에게 아이가 ‘니가 뭔 상관야, 쌕꺄’했다는 담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은 아이 뺨을 올려붙이고 있었다. 아이가 맥없이 쓰러졌다. 그 순간, 뒷골이 띵 하고 울리며 최초의 두통이 일었다. 나는 일시적인 증상이겠거니 대수롭잖게 여기고 화가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담임에게 사과도 할 겸 담임과 학교 앞 식당에서 술을 나눠 마셨다. 술기운 때문에 곧바로 나서지 못하고 아이 기숙사에서 벌겋게 부어오른 아이 뺨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새벽녘에 상경했다. 아이는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하고도 이까지 갈며 태평스레 자고 있었다. 이 가는 건 제 엄마를 닮았다. 나는 그것이 새삼스러웠다. 아이를 갖고서 우리 부부가 행복해했던 순간이 아주 먼 옛날 일 같았다.

임신 6개월쯤 됐을 때, 아내는 뒤뚱거리며 시장에 가 굳이 천 기저귀감을 끊어와서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토요일 밤에 아내와 나는 올이 풀리지 말라고 기저귀 천을 시침질했다. 그냥 사서 쓰는 일회용 기저귀를 쓰면 될 일이지 않냐고 내가 물었을 때 아내는 돈도 아끼고 환경오염도 줄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내는 야무지고 선량한 여자였다.
채 여명이 밝지 않은 국도변에 차를 세 번 세웠다. 목울대를 치받치고 올라오는 낯선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처음에는 울음인 줄 알았다.

그것이 마지막이겠거니, 자연환경 좋은 그곳에서 지내다 보면 날선 아이 마음도 흙처럼 부드러워지겠거니, 하고 보낸 학교였다. 외부에서 대안학교라 부르는 학교지만 아이에게 결과적으로 그곳은 대안이 아닌 곳이 되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희망이라 여겼던 학교를 벗어난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세상에 열다섯 살짜리가 갈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집과 학교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 만화방, 피시방, 오락실, 당구장, 터미널, 공원……. 밤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의사는 내 두통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사가 말한 신경성이란 것이 결국 잘 모르겠다, 란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사의 처방대로 약국에 들러 진통제를 샀다. 하루에 세 번 식후에 두 알씩 먹으라는 약사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네 알의 아스피린을 공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머리통 안은 여전히 벌통을 쑤셔놓은 듯했지만 알약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어떤 쾌감 같은 느낌이 빠르게 뱃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근 한 달째, 통증은 잠 속까지 따라왔다. 두통이 시작된 이래로 제대로 된 잠을 전혀 자지 못했으니, 내 수면 부족도 한 달이 다 된 셈이다. 그 한 달 동안에도 아내는 내 두통은 아랑곳없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내의 발작적 히스테리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저항해야 할 성질도 아니다.

아내에게는 가슴이 없다. 5년 전에 아내는 한쪽 가슴을 도려냈고 3년 전에 나머지 한쪽도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나마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돌이켜보니 아내가 아직 아프지 않았을 때, 그리하여 아름다운 가슴을 간직하고 있던 시절, 나는 행복했던 것도 같다. 내가 아내의 가슴을 좋아하는 것이 그때 우리 부부의 행복 중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 아내의 가슴이 없는 지금, 내가 그 전에 아내의 가슴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아내로 하여금 그 끝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한 이유가 될 줄 알았더라면, 나는 아내의 가슴 따위 손끝 하나 대지 않았으리라. 가슴이 없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발등을 내가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는 추궁하듯 내게 따졌다.

“당신, 내 가슴 좋아했지?”

내가 아내의 가슴을 좋아했을까? 이제 와서 나는 내가 아내의 몸 중 특별히 좋아했던 부위가 어떤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좋아했잖아!”

아내가 앙칼지게 되물었다.

“응, 좋아했지.”

“근데, 이제 나 가슴 없는데,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없으면 없는 대로…….”

“거짓말하지 마, 당신 여자 몸 중에 유독 가슴을 좋아하잖아, 안 그래?”

내가 그랬던가? 내가 그런 식으로 기억하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여자인 아내를 좋아했을 뿐, 아내의 몸과, 아내의 영혼과, 하여간 아내라는 여자를 사랑했을 뿐이다, 라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아내가 내게 추궁하듯 따지고 들 때마다 끓어오르는 부아를 지긋이 참아내는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 하자는 소리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내 반응 여부에 따라 아내의 히스테리 양상은 달라졌다. 일체 무반응. 시간이 지나면 아내는 통곡했고 통곡이 끝나면 잠이 들었다.

퇴원을 앞두고 의사는 직업적으로 명료하게 말했다.

“많은 가슴 절제 환자 분들이 후유증으로 우울증적 증세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 가족 분들의 세심한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배려. 그러나 ‘배려’는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아주 고난도의 생활 습관이라는 것을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깨달아야 했다. 같이 밥을 먹어도 평소에도 밥 먹는 속도가 워낙 빠른 내가 먼저 먹게 되어 있었다.”


An unpolished & incomplete translation attempt:

In the Rain


The cell phone rang just as I came out of the hospital. I’d completely forgotten that I even had a phone, since I don’t get any calls these days. So I was momentarily surprised when it rang. It was the kid’s school. The wife wouldn’t have answered the phone at home. She doesn’t answer any calls. Did she also have a cell phone?

“Your son has gone missing. It’s been two days. This time three guys stole a bike in the neighborhood and disappeared altogether. Fortunately, the bike owner hasn’t filed a report, saying that he’ll wait till the kids return, otherwise this is grand larceny, grand.”

How long had it been since he’d gone to school after the end of the summer vacations. Barely a week. Compared to what had taken place, the teacher-in-charge’s voice was calm and composed. Did the composure of the homeroom teacher reflect the school’s sense of resignation about my son? It was possible. Even last semester, the kid had been in trouble three times or so. But even so, wasn’t the composure too much. He was still their student… at the end of that sentence something squirmed inside me. At first, that something suddenly appeared and disappeared near my navel. I can’t make out from where it had come. It seems like it comes from a place deep inside my bowels, a place faraway, and then it seems that it has popped out from near my bellybutton just like that. I don’t want to positively label it as crying. The feeling isn’t concrete and there’s something abstract to do that. Be that as it may be, I don’t want to call it sorrow either. If I do that, it loses even the concreteness that it has. This thing that isn’t crying or sorrow is haggardness, so to speak. It’s familiarity. It’s a chill. No, it’s a visitor from an entirely unfamiliar foreign land. This foreign guest has taken possession of my insides. Slowly, and then swiftly the visitor will destroy my insides. I will have to helplessly watch unexpected flaky dust rising from inside me. A whirlwind of dust. The whirlwind rises up slowly through the pit of my solar plexus. It starts hurting my Adam’s apple. The teacher, who could not have known the identity of that what hurt my insides, asked me in the obvious low and, then again, dreary tone he intentionally used normally.

Wednesday, April 18, 2012

끝에 선 나무들 - 정끝별

Barbed-wire-in-a-tree787

Inspired by the PEN Translation Slam @ http://www.pen.org/blog/?p=1094. JWC & SKR’s translations are so much better though.


끝에 선 나무들
 - 정끝별

철조망과 제 몸을 섞어가며 자라는
체인을 제 몸에 밀어넣고 자라는
제 몸에 박힌 수류탄 껍질을 품고 자라는
난간이나 울타리를 제 몸에 삼킨 채 자라는
이름 모를 나무들을 본 적 있다

조여오는 것들,
밀어내는 힘이 없을 때
품어안았던 것도 같다
가로막는 것들,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이 없을 때
차라리 빨아들였던 것도 같다
뜨거운 흉터가 될 줄 알면서도

그러니 21세기여
우리 너무 깊이 사랑하지 말자


Trees by the Edge
- Jeong Kkeut-byeol

Growing by blending in their bodies with the barbed wires,
Growing by pushing in the chains,
Growing by embracing the entrenched shrapnel,
Growing, having swallowed railings or fences,
I've seen such nameless trees.
 
Things that squeezed them in,
when they had no strength to push away,
they must have embraced.
Things that blocked them,
with no foothold to leap over,
they might as well have sucked in,
aware that they would become searing scars.
 
So, oh twenty first century,
Let us not love too deeply.


Monday, April 16, 2012

샐러리맨 초한지 (History of the Salaryman) MV


샐러리맨 초한지 MV

The drama was good… the MV even better. Love the song, love the concept. The MV actually ties in with the title ‘History of the Salaryman’ much better than the drama itself, which moves on from being a story of a ‘salaryman’ to one more about ‘businesses’ and power struggles.